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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냐노는 왜 파스타의 도시가 됐나

밀이 잘 자라서가 아닙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2026.09.10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30km, 라타리 산맥이 나폴리 만으로 떨어지는 비탈에 그라냐노가 있습니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인데, 이탈리아에서 파스타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입니다.

이유는 밀이 아닙니다. 바람입니다.

두 개의 공기가 만나는 자리

그라냐노는 산과 바다 사이에 걸쳐 있습니다. 위로는 라타리 산맥에서 서늘하고 마른 공기가 내려오고, 아래로는 나폴리 만에서 짭짤하고 습한 바닷바람이 올라옵니다. 이 둘이 만나는 자리에 생긴 미기후 — 서늘하되 습기가 적당하고, 바람이 늘 지나가는 상태 — 가 파스타를 말리기에 딱 맞았습니다.

파스타를 말리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너무 건조하면 겉이 먼저 굳어 갈라지고, 너무 습하면 마르지 않고 상합니다. 온도가 높으면 빨리 마르지만 밀 향이 날아갑니다. 그라냐노의 공기는 그 사이의 좁은 구간에 자연히 들어와 있었습니다.

도시를 바람에 맞춰 지었다

여기서부터가 이 도시의 특별한 점입니다. 그라냐노 사람들은 바람을 이용한 데서 그치지 않고, 바람이 더 잘 지나가도록 도시를 다시 설계했습니다.

19세기 중반, 거리와 건물의 배치를 마에스트랄레(북서풍)가 통과하기 좋게 조정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큰길이 지금의 비아 로마이고, 사람들은 이 길을 바람의 길이라 부릅니다. 길 양쪽으로 장대를 걸고 수 킬로미터에 걸쳐 파스타를 널었습니다. 햇빛과 바람만으로 며칠에 걸쳐 말렸습니다.

도시가 공장이었던 셈입니다.

숫자로 본 전성기

19세기 초 그라냐노에는 파스타 공방이 70곳쯤 있었습니다. 세기 중반에는 100곳을 넘었고, 활동 인구의 75%가 파스타 산업에서 일했습니다. 하루 생산량은 1,000퀸탈, 그러니까 100톤을 넘었습니다.

인구 몇만 명의 도시가 그 정도를 만들어 어디로 보냈느냐 하면, 나폴리 항을 통해 이탈리아 전역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나갔습니다. 이민자들이 가져간 그라냐노 파스타가 지금 우리가 아는 이탈리아 음식의 이미지를 만든 통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규정이 되었다

2013년 10월, 유럽연합은 파스타 디 그라냐노 IGP를 인정했습니다. 밀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올 수 있지만 반죽하고 뽑고 말리는 일은 그라냐노에서 이뤄져야 하고, 물은 라타리 산맥의 것을 쓰며, 청동 다이로 뽑아 저온에서 천천히 말려야 합니다.

규정이 붙잡은 지점이 정확히 말리는 조건이라는 게 이 도시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그라냐노를 만든 것은 밀이 아니라 공기였고, 규정도 그것을 지킵니다.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마마스마켓이 수입하는 파엘라(Pastificio Gaetano Faella)는 1870년에 시작해 1907년부터 지금 자리인 피아차 마르코니에서 파스타를 만듭니다.

이제는 길에 널지 않고 건조실에서 말리지만, 조건은 그대로 옮겨 왔습니다. 최고 48℃에서 최소 이틀. 긴 칸델레는 60시간까지 갑니다. 현대식 공장이 90~115℃에서 몇 시간이면 끝내는 일을, 그라냐노는 여전히 이틀 넘게 합니다.

느리게 말리면 면이 급하게 수축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안쪽에 미세한 구멍이 많이 남습니다. 그 구멍으로 소스가 표면에 묻는 데 그치지 않고 안까지 배어듭니다. 바람의 길에서 며칠씩 말리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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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그라냐노#파스타#IGP#파엘라#산지 이야기#저온 건조